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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막작

게임의 규칙

Changing the Game

마이클 바넷 – 미국 – 2019 – 90분 – 다큐멘터리 – 영어 – 한국어자막, 한국수어영상

 

 

작품 줄거리

맥과 안드레아, 새라는 청소년 스포츠 선수이자 트랜스젠더다. 이들은 모두 남자, 또는 여자 리그에 속해있다. 어떤 주에서는 트랜스여성으로서 여자 리그에서 뛰는 것이 허용되지만 어떤 주에서는 태어날 때 지정받은 성별에 따라 리그가 결정된다. 단 두 개의 성별로 공고히 나뉜 게임의 세계에서, 이들은 상대 선수뿐만 아니라 혐오에도 맞서야 한다. 각자의 삶과 경기를 통해 자신의 주변과 세계에 변화구를 던진다. 트랜스여성이자 발랄한 유튜버인 스키 선수 새라는 말한다. “이게 나”라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왈가왈부하게 두지 않을 거”라고.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프로그램 노트

때로 혐오는 공정성의 이름으로 둔갑한다. <게임의 규칙> 속에는 공정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맞는” 트랜스남성 맥이 여자 리그에 있는 것이, “생리하면서 뛰어본 적이 없는” 트랜스여성 안드레아가 여자 리그에 있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특정 성별로서의 일상을 살다가 경기에서만 다른 성별로 호명되어야 하는 삶은 누구에게 공정한가. 이들의 게임은 승패를 가르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자살을 시도하는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비율이 40%에 달하는 세상에서, 이들에게 경기란 오롯이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음을 드러내고 증명하는 장이기도 하다. 이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다.

<게임의 규칙>이 마주하는 혐오와 차별은 지난봄 한 트랜스여성이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하게 했던 혐오와 차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여성”의 자리를 “뺏는다”는 말이 담지 못하는 장면들이 있다. 트랜스젠더로서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몸을 견뎌내고 태어날 때 부여받은 성별을 거부하며 자신의 존재를 마주하고 드러내기까지의 장면들 말이다. 공정함도, 권리도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서 만드는 게 아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로 이분된 체계에 부합할 수 있는 “정상성”을 외치는 것은 모두가 지는 게임일 뿐이다.

규정된 몸에 순응하지 않고 존재만으로도 투쟁이 되는 이들이 집에서, 학교에서, 경기장에서, 거리에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며 세상을 바꾸고 있다. 자신을 “강성 공화당”이라고 말하면서 맥을 응원하는 할머니, 새라와 메이크업 영상을 찍으며 깔깔대는 친구들, 안드레아 덕분에 세상에 나올 용기를 얻었다는 동료 트랜스젠더 선수가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맥이, 새라가, 안드레아가 트랜스젠더로서 오롯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가 뭔지도 몰랐”다던 코치가 자신의 선수와 함께 혐오에 맞서는 동지가 된다. 때로는 치열하게, 때로는 발랄하게. 우리의 저항과 연대는 그렇게 퍼져 나가 거리를 채운다. 그러니 이제, 당신도 우리의 거리를 마주할 차례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인권해설

성별 구분 없는 공정을 생각해보다

요즘 공정이라는 단어가 많이 회자되고 있다. 치열한 경쟁 사회이다 보니 ‘모두가 승리할 가능성을 공평하게 갖는 공정한 룰’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람이 많다.. <게임의 규칙>은 어떤 면에서 보면 공정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 기존의 공정을 흔드는 질문을 한다. 공평한 기회를 가져야 하는 ‘모두’에 포함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 말이다. 

“9.58초 vs. 10.49초, 484kg vs. 384kg, 2.45m vs. 2.09m”

이 숫자는 육상 100미터 세계 기록, 역도 종합(인상과 용상의 합계) 세계 기록, 높이뛰기 세계 기록에서의 남자부와 여자부의 기록 차이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차이는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말해왔다. 태생적인 남녀 간의 차이는 어쩔 수 없으며 스포츠에서 성별을 구분하여 경쟁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것을 상식으로, 명백한 과학적 사실로, 그리고 공정함으로 말해왔다. 세부적으로는 남녀의 근육량과 근력, 호르몬의 차이나 체구와 골격의 차이를 분석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스포츠 영역에서 성별 구분은 변할 수 없는, 변해서는 안 될 공정한 룰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호르몬의 영향은 기록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과학적 근거가 축적되고 있고, 기록된 숫자들 간 차이는 절대 불변이 아니라 느리고 점진적이지만 점점 간격이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공유하고 있던 룰이 과연 공정한지 되묻게 한다. 영화 속 맥, 새라, 안드레아의 이야기는 기존의 룰이 가졌던 모순을 확연히 드러낸다.

‘엘리트 스포츠에서 엄격한 성별구분이 공정함을 담보하는가?’라는 질문은 현대 스포츠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스포츠 분야에 트랜스젠더와 인터섹스 선수는 계속 존재해왔다. 1970년대 트랜스여성 테니스 선수 르네 리차드는 여자 테니스 협회(WTA)의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US오픈 대회에 출전했다. 종합격투기 선수 펠런 폭스는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첫 번째 트랜스여성 선수로서 여성부에서 5승 1패의 전적을 가진 바 있다. 페트리시오 마누엘은 미국의 여성부 아마추어 권투 챔피언이었다가 2018년 남성부로 옮겨 프로로 데뷔한 권투선수였다. 트랜스남성인 크리스 모이저는 2009년부터 여성 선수로서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하다가 2010년 법적/의료적 성별정정을 한 후 전미 철인 3종 경기 남자부에서 1시간 2분 45초의 기록을 세우며 국가대표의 자격을 획득했다. 역사상 최초로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미국 육상 국가대표가 된 것이다. 베로니카 아이비는 배드민턴에서 사이클로 종목을 변경한 후 2019년 200미터 스프린트 사이클의 연령별 세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유명한 인터섹스 선수들도 다수 있었다. 1930년대 육상 여성부 100미터 종목에서 세계 기록을 네 차례 경신했던 스텔라 왈시, 1990년대 여성부 유도 선수로 활약하였던 브라질의 에디난시 실바,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800미터 여성부 우승자 캐스터 세메냐 등이 대표적이다. (당연히 언급된 이들이 엘리트 체육에 출전했던 트랜스젠더와 인터섹스 선수의 전부는 절대 아니다.)

2016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트랜스젠더 선수의 출전 자격에 대한 규정을 개정하였다. 새 규정에 따라 트랜스젠더 선수 역시 자신의 성별에 따라 올림픽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속 안드레아와 테리가 뛰고 있는 코네티컷주와 유사한 규정이 올림픽에서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테스토스테론이 공정함을 해하지 않는다’는 과학적 근거가 IOC가 규정을 바꾸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변화는 1967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염색체 검사를 하기 전까지는 선수들을 탈의시키고 육안으로 성별 검사를 했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IOC의 규정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트랜스남성은 제약 없이 남자부에 출전할 수 있지만, 여자부에 참가하려는 트랜스여성의 경우에는 지난 4년 간 여성으로 살아왔어야 하고  참가 직전 12개월 동안과 경기 기간 동안의 혈청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10nmol/L 이하여야만 한다.

엘리트 스포츠에서 존재해왔던 트랜스젠더와 인터섹스 선수의 역사를 살펴본 이유는 맥, 새라, 안드레아와 테리의 사례가 결코 새로운 것도, 특이한 것도 아니고 근대 스포츠가 시작된 이래로 늘 논쟁적이었으며 스포츠 내 성별 구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관객들과 함께 고민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1) 경쟁을 하는 스포츠에서 성별의 구분은 공정함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맞는가?
2) 운동 능력에 있어, 여성의 신체는 남성의 신체보다 열등하다고 간주하는 게 정당한가?
3) 스포츠는 반드시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여야만 가치 있는 것인가?

만약 이 영화를 본 당신이 이 세 가지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였다면, 우리는 성별 구분이 아예 없는 스포츠를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국제 스포츠 종목 중 성별 구분이 없는 승마, 요트 등 일부 하위 종목, 패럴림픽의 보치아 종목 같은 소수의 예외 사례에서뿐만이 아니라, 스포츠 영역 전반에 걸쳐서 말이다. 

준우(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감독

 마이클 바넷 감독 사진

마이클 바넷 Michael Barnett

마이클 바넷은 에미상을 수상한 영화인으로 문화와 사회정의를 담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왔다.

 

번역 심지, 남선(서울인권영화제)

번역 감수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장애인접근권 연출 권태(서울인권영화제) 애란, 보석(한국농인LGBT)

한국수어통역 보석(한국농인LGBT)

자막해설 권태, 채영(서울인권영화제)

자막 성령, 고운(서울인권영화제)

 

상영 일정

본 상영 11/30 10:00 ~ 12/1 10:00
앙코르 상영 12/1 10:00 ~ 12/6 10:00

 

라이브토크 – 광장에서 말하다

11/30 19:00 서울인권영화제 유튜브 채널

스틸컷

댓글

  • 2020년 12월 21일
    (๑・̑◡・̑๑)

    보는 내내 마음이 덜컥 하면서도 힘이 나는 영화. ‘공정’으로, ‘평등’으로, 다른 이름으로 혐오를 외치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당신이 이야기하는 공정과 평등은 허상이라고. 누군가의 존재를 짓밟고 쟁취할 수 있는 존엄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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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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