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ous arrowprevious arrow
next arrownext arrow
Shadow
Slider

문 밖에서 잇는 날들

Neighbors

토미슬라브 자야 – 캐나다 – 2018 – 74분 – 다큐멘터리 – 크로아티아어, 영어 – 한국어자막, 한국수어영상

 

 

작품 줄거리

크로아티아 오시예크에 있는 정신장애인 시설이 폐쇄됐다. 시설 종사자마저 감옥같다 표현하던 시설이 문을 닫았다. 약 50년이란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지원도 교육도 없이 이곳에 남아있었던 사람들이 문밖에서 처음으로 이어나가고 싶은 것들은 무엇일까? 즈베즈다나와 스테판은 빼앗겼던 아이를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브란키챠와 트벨리는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고 젤리카는 고양이와 함께 독립생활을 시작한다. 주변 정돈을 좋아하는 다르코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망가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집을 가꾼다. 슬라브코는 바에서 일을 시작한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보석

 

프로그램 노트

“당신은 자유다. 그게 당신이 길을 잃은 이유다.”

정신장애인 시설에서 나오게 된 사람들의 목표는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구속 없는 하루를 보내는 것, 결혼과 출산이라는 버겁고 벅찬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가족을 갖는 것, 둘만의 장소에서 지내는 것, 그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정돈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 누구에게나 당연히 주어졌어야 할 일상이었다.

“법이 모두에게 평등하다면, 저한테도 평등해야죠.”

왜 누군가는 끊임없이 법과 평등과 자유의 이름으로부터 배제됐으며 오롯한 자신의 공간마저 지니지 못했나. 때때로 사회는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말로, 혹은 정신질환자도 ‘정상’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치료와 격리를 강요했다. 그러나 시설 안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빼앗겼다. 나의 공간을 꾸려나가는 일이나 나에게 맞는 노동환경을 조성해가는 것처럼 평범한 삶의 궤적에 오르고자 할 기회를 빼앗겼다. 사회가 주목한 것은 우리의 질환이 가져올 혹시 모를 위험이었지 우리의 삶이 아니었다.

사회가 정신장애인에게 정상의 기준을 들이미는 한, 격리와 수용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적 집단으로 바라보는 한, 사회는 격리수용소의 거대한 확장판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탈시설은 단순히 ‘격리해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수용소의 논리’는 불편한 것들을 한데 묶어 어느 한켠에 숨겨두면 끝이라 여기고는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끝없는 의문이다. 정신질환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선 약물치료를 너머 어떤 사회적 지원이 마련돼야 하는지, 시설의 밖에서 어떻게 오롯한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담론이다.

“다 괜찮아질 거예요. 전 제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점점 나아진다는 것. 물리적 탈시설을 경험한 슬라바코는 위와 같이 증언한다. 점점 나아지는 삶을 경험한다는 것, 그리고 점점 나아지는 삶을 꾸려간다는 것. 탈시설은 수용소의 논리에 대한 정면의 도전이다. 숭고한 개인의 사소한 일상을 위한 위대한 도약이다. 그러니 감히, “정신장애인에게 삶을 허하라”.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인권해설

시설이 존재하는 이유는 시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 시설에 거주인의 수만큼 세금이 투여되고, 후원금이 도착하고, 자원봉사자가 파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시설 정책은 시설 밖으로 나오고 싶은 거주인에게 훈련과 자립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우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시설에 가도록 만드는 인프라를 제거함으로써 탈시설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장애여성공감은 [시설사회 – 시설화된 장소, 저항하는 몸들]’이라는 책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시설화가 근대 국가의 출현과 함께했으며, 국가의 경계를 세우고 누가 국민인가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허락 없이 국경을 넘은 사람, 국가가 허용하는 것을 넘어선 사상을 가지고 다른 질서를 만들기 위해 실천한 사람, 다른 인종과 섞인 ‘혼혈’의 사람, 가정에서 내쫓기거나 부양받지 못하는 사람 등을 시설에 수용해왔다는 점을 밝혀내었다.

하지만 시설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이 탈출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타인과 중요한 관계를 맺고, 이들이 함께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면서 시설수용이 운명이 아니라 국가의 의지와 선택이었다는 점을 방증했다. 그 의지와 선택을 어떻게 다르게 만들어나갈 것인가는 무엇이 기본적인 권리인지, 누가 지금 그 권리에서 제한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지목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시설이 없다는 전제하에서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을 권리로 만드는 것,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시설에 가도록 만드는 것이 강제라고 말하는 것에 용기를 내야 한다. 제주에 예멘에서 온 난민이 도착했을 때 “너네 집에 들일 것이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많았다. 시설 문제도 마찬가지다. 당장 가족 중에 환자가 생겼을 때 내 생활을 포기해야 할까 두려워서 침묵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돌봄 책임을 개인에게 독박 씌우고, 가족 내 여성에게 노동을 전가하며, 돌봄 받는 사람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을 고정시키고, 서로를 적대하게 하며 모두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 국가와 사회에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18년 4월 20일 다음을 선언했다. ‘2028년 4월 20일까지 모든 장애인거주시설은 폐쇄한다. 모든 장애인의 권리는 지역사회에서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에서 나온다.’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1조-

어떻게 하면 시설폐쇄가 가능해질까? 시설을 유지함으로써 구체적인 이득을 얻는 세력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시설에 있기에 안심하고, 두려워서 같이 살기를 포기하는 ‘우리’ 모두가 시설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모두가 용기를 내어야 하지만, 그 용기의 출처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리고 사회가 달라질 수 있을 때 정말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일 것이다. 그래서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 사람이 관계 맺는 방식, 세계를 유지하는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시설사회에 대한 자각과 그것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는 언제, 어디에서 시작될까? 가장 강력한 것은 바로 지금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일 것이다. <문밖에서 잇는 날들>에서, 정신장애인 시설에서 의사로 일하던 이가 “거주인이 이곳을 감옥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간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을 인정하고, 더이상 간수로 살지 않기 위해서 감금된 사람과 함께 해방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었다. 서로를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내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너와 새로운 관계를 맺겠다는 용기, 그것이 시설사회를 바꾸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타리(장애여성공감)

 

감독

토미슬라브 자야 감독 사진

토미슬라브 자야 Tomislav Zaja

50편 이상의 다큐멘터리, 4편의 극영화에서 작가와 제작자로 활동했다. 소수자의 경계, 인신매매, 난민, 정신장애인 등 주로 사회권 및 인권과 관련된 주제를 다룬다. UN개발계획, 세계보건기구, 오픈소사이어티 재단와도 협력하고 있다.

 

번역 이한솜

번역감수 난슬(장애여성공감)

 

장애인접근권 연출 채영(서울인권영화제) 지양, 태환, 보석(한국농인LGBT)

한국수어통역 보석(한국농인LGBT)

자막해설 채영(서울인권영화제)

자막 채은, 레고(서울인권영화제)

 

상영 일정

본 상영 11/28 10:00 ~ 11/29 10:00
앙코르 상영 12/1 10:00 ~ 12/6 10:00

 

라이브토크 – 관객과의 대화

12/5 19:00 서울인권영화제 유튜브 채널

스틸컷

댓글

  • 2020년 12월 21일
    세바디

    다시 한 번 천천히 보고 싶은 영화

댓글 남기기

서울인권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