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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보라

Bora Bora 

김도준, 김미영, 김승화 – 한국 – 2020 – 180분 – 다큐멘터리 – 한국어 – 한국어자막, 한국수어영상

 

 

작품 줄거리

한국도로공사의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 1500명이 하루아침에 해고됐다. 자회사를 택하지 않고 직접고용을 원했기 때문이다. ‘설마 이 인원이 해고 될까?’ 생각했던 노동자들의 투쟁은 모두의 예상 밖으로 장기화된다. 정부와 도로공사는 내일이 불안하지 않은 일을 하게 해달라는 이들의 외침을 외면한다.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은 톨게이트 위로 올라가고, 길에서 잠을 자고, 오체투지를 하고,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한다. 공권력과 자본에 맞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서로의 곁을 나누는 버팀목이 된다. “투쟁”이라는 외침이 어색했던 이들의 연대는 서서히 자본에 균열을 낸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은긍

 

프로그램 노트

한국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다.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의 80%는 중장년 여성이고,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를 택하지 않은 1500명의 요금수납 노동자를 해고했다. 분노한 노동자들은 “처음 해보니까 견딜 수 있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투쟁해보겠냐”라고 말하며 톨게이트 위로 올라가고,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한국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했다. 거리로 나온 투쟁은 처음이지만 부당함을 온몸으로 겪던 노동자들의 일상은 이미 투쟁이었다.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담아주고 싶은 마음에 노동자들은 직접 카메라를 든다. 영화 속 노동자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함께 웃는다. 회사가 이들의 사이를 가르려고 해도, 서로 의견이 달라도, 끊임없이 고민을 나누고 함께 버틴다. 두렵다고 해도, 자신이 없다고 해도, 화가 난다고 해도 괜찮다. 어떤 마음인지 서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에 투쟁의 목표는 언제나 ‘함께’, ‘모두’, ‘1500명’이다.

2020년 1월,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217일간의 투쟁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대법원판결 승소 후 도로공사로 출근한 노동자들은 고속도로 비탈길 청소, 제초작업, 떨어진 돌 줍기를 한다. 수납업무는 자회사 일이라며 도로공사는 이들의 원직복직을 거부한다. 임금은 줄었고 쉼은 땡볕에서 허락된다. 일하던 곳, 거주지와 먼 곳으로 발령받은 노동자들은 각지로 흩어진다. 이들의 노동환경은 투쟁 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함께 싸우며 어깨를 부딪치고 율동을 하며 손을 맞잡던 감각을 기억한다. 바뀌는 계절이 불안하지 않은 삶,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음 세대가 비정규직으로 불안해하지 않는 삶을 위해 계속해서 싸운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수많은 투쟁은 오늘도 이어진다. 그렇게 “투쟁”을 외치며 서로에게 보내는 팔뚝질이 어색했던 이들의 연대는 자본에 균열을 낸다.

투쟁을 이어가는 노동자들도, 우리도, 정부도, 한국도로공사도 알고 있듯,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옳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인권해설

217일간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우리가 옳다
– 그/녀들이 한국 사회에 던진 질문, 파문이 되어

2019년 한국 사회를 기억할 때 빠지지 않는 사건은 한국도로공사(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의 투쟁일 것이다. 비록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그/녀들의 투쟁은 우리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도로공사의 타협과 협박에 굴하지 않는 치열한 싸움이었으며, ‘혼자 먼저’가 아니라 ‘함께’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재판에서 승소를 한 사람이건 아니건, 입사 시기가 언제이건 모두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했기에 울림은 크다. 영화<보라보라>를 보면 노동자들이 숱하게 부대꼈을 갈등과 질문은 원칙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자회사라는 간접고용을 거부하다

영화는 2019년 7월 1일부로 해고된 1,500명의 노동자가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했던 고공농성에서 시작한다. 그/녀들의 투쟁은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한 불법파견에 대한 법정 소송부터 본격화된다. 정규직이었던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2009년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선진화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전원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요금소 수납 업무를 위탁받은 용역업체 사장은 대부분 도로공사의 명예퇴직자들로, 말이 위탁이지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도로공사의 지휘와 명령을 받고 업무를 했다. 그러므로 법원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톨게이트 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자회사를 만들어 자회사 정규직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대법원 판단 전에 불법파견 여지를 없애 법원의 결정을 무력화하려는 꼼수였다. 그/녀들은 1~2년 단위로 맺는 고용계약 때문에 영업소장들의 개인 업무도 해야 했던 억울함, 성희롱, 성추행을 감내해야 했던 모욕과 폭력을 이미 경험한 바 있기에, 자회사도 도로공사가 위탁계약을 끝내면 하루살이 목숨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마디로 자회사 입사도 고용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간접고용이다. 1,500명의 노동자들이 자회사를 거부하자, 도로공사는 6월 30일 집단 해고를 진행한다. 다수의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법원 소송과 자회사 조치를 전후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회사에 맞서 싸운다. 어쩌면 노조활동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기존의 노조운동이 관성적으로 반복한 각본에 얽매이지 않은 원칙과 동료애를 붙들고 싸울 수 있었는지 모른다.

고공농성에서 오체투지까지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의 투쟁은 몇 번의 변곡점을 그린다. 해고 후 대법원 판결 전까지는 캐노피 고공농성과 청와대 앞 집단농성을 동시에 진행한다. 도로공사는 공공기관이고 대통령이 이강래를 사장으로 임명했을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여전히 공공기관 자회사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소송인 719명)이라는 판결을 받고도 도로공사가 이를 이행하지 않자 노동자들은 9월 9일부터 김천 도로공사 본사에서 농성 싸움을 한다. 이것이 두 번째 변곡점이다. 자진 해산한 2020년 1월 30일까지 145일간을 농성 투쟁을 이어갔다. 싸움이 장기화되자 투쟁 거점을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어가는 것이 세 번째 변곡점이다. 11월, 본사에 있는 조합원의 일부는 도로공사 관리감독주체인 김현미 국토부장관 사무실 및 더불어민주당의 여러 의원실을 점거하며 싸움을 전개한다. 동시에 정부종합청사에 거점농성장을 만들고 오체투지와 단식투쟁도 이어간다. 투쟁이 길어질수록 조합원 숫자는 조금씩 줄어간다. 그러나 그/녀들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싸움이 옳기에,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싸우자는 처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러던 중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은 총선 출마를 위해 집단 해고에 대한 문제 해결 없이 사장직을 사퇴한다. 노동자들은 한 번 더 거점을 옮겨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 공천 반대운동과 낙선운동도 전개한다.

많은 싸움이 그렇듯 사측과 정부는 투쟁하는 사람들을 분리시키려고 했다. 처음에는 대법원 판결자만을, 나중에는 2015년 입사자들을 분리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함께 가야한다’며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12월, 뒤늦게 소송한 노동자 3,869명에 대한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의 판결로 모두 불법파견임이 분명해졌음에도 도로공사는 끝까지 노조와 합의하지 않았다. 법원 판결을 반영하겠다던 도로공사는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되 현장지원직이란 새 직군을 신설해 기본급의 15%를 삭감했고, 고소고발도 취하하지 않았다. 1심 계류 중인 2015년 이후 입사자에 대해선 추후 판결을 보고 직접 고용하겠다며 해결을 미뤘다. 결국 노동자들은 사측의 제대로 된 합의 없이 긴 싸움을 마무리하고 복직해야 했다.

현재 그/녀들은 도로공사에 직접 고용되어 일하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있으면서 겪었던 모욕과 설움, 불안함이 현재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 그녀들의 현재가 궁금하다. 그/녀들이 투쟁 과정에서 얻은 세상의 크기, 정의의 무게가 현재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도… 투쟁을 정리하던 날, 몇몇의 여성노동자들이 톨게이트농성장 옆에 있던 마사회 기수 고 문중원열사의 추모농성장에 들려 “먼저 떠나서 미안하다”며 유족의 손을 잡아주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던진 질문은 아직도

그/녀들은 정규직으로 현장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한국사회 노동구조는 비정규직 중심이다. 1998년 파견법이 제정된 후, 간접고용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부분이 여성과 장애인인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의 고용형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듯이, 노동의 밑바닥인 비정규직은 ‘개인의 노력(능력)’ 여부가 아니라 ‘제도와 정책’으로 인해 생겨난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공기관의 정규직 선발은 ‘공채시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 ‘경쟁신화’와 ‘각자도생’이 만연한 현재를 어떻게 딛고 가야할 것인가. 우리에게 설렘과 분노를 동시에 주었던 2019년의 외침, ‘우리가 옳다’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는 이유기도 하다.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감독

김도준 감독 사진

김도준 KIM Do-joon

2008년에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과 동자동 사랑방의 도움을 받아 단편영화 <떨꺼둥이>를 연출했다. 2016년에는 정릉 스카이 아파트가 철거되기 전, 주민들의 구술 기록 작업을 진행했다. 이때 만난 할머니 세 사람의 역사와 마을 민속지, 유창숙 배우의 삶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2017년에 단편영화 <율리안나>를 연출했다. 2019년부터 서울과 김천을 오가며, 집단 해고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과 그들의 투쟁을 촬영했다. 투쟁 현장의 노동자들과 협업하여 다큐멘터리 <보라보라>를 제작했다.

김미영 감독 사진

김미영 KIM Mi-young

“신랑과 냐옹이 3형제와 느긋하게 살아오던 중 뉴스에서나 접하던 노동자의 치열한 투쟁의 길이, 나의 길이 될 줄도 모른 채” 2017년 7월, 신림 영업소에 요금수납원으로 입사했다. 해고된 이후 숨가쁜 투쟁의 길에 접어들며 캐노피와 청와대 노숙, 죽기 살기로 밀고 들어간 김천 본사와 광화문 노숙과 국회의원 사무실 점거까지 격동의 장소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 안에서 “언니들 표정 하나하나 다 담아주고 싶다”는 욕심으로 캠코더를 들었다.

김승화 감독 사진

김승화 KIM Seung-hwa

2013년 10월, 고덕 영업소에 요금수납원으로 입사했다. 입사 전에는 텔레마케팅, 홈쇼핑, 편의점 고객센터, 동대문 의류 사업, 보석 세공 작업, 애견미용까지 비정규직을 두루 거쳤다. 자회사 전환을 거부해 2019년 6월 1일 해고되고 나서,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 위에 올라가 98일간 고공농성을 했다. 그곳에서 자신과 동료들의 투쟁과 일상을 캠코더로 기록했다. 캐노피에서 내려온 이후에는 김천 본사 실외 농성장을 촬영했다.

 

장애인접근권 연출 채영(서울인권영화제) 애란, 태환, 진영(한국농인LGBT)

한국수어통역 진영(한국농인LGBT)

 

상영 일정

본 상영 11/24 10:00 ~ 11/25 10:00
앙코르 상영 12/1 10:00 ~ 12/6 10:00

 

라이브토크 – 관객과의 대화

12/3 19:00 서울인권영화제 유튜브 채널

스틸컷

댓글

  • 2020년 11월 29일
    은주

    운동에 대한 고민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단결 투쟁! 언니들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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