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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기 있다

Invisible Men

루이 카를로스 데 알렌카 – 브라질 – 2019 – 25분 52초 – 다큐멘터리 – 포르투갈어 – 한국어자막, 한국수어영상

 

 

작품 줄거리

이 방에 두 명, 옆 방에 세 명. 여자교도소에 남자가 있다.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 두 줄로 선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트랜스 남성들이 있다. 교도관들은 나를 여자라고 부르며 나의 수염을 밀어버리고 속옷 하나도 마음대로 못 입게 하는데 다른 여성 수감자들은 나라는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교도관들에게 맞지 않으려면 여자가 되어야 하고 다른 수감자들에게 맞지 않으려면 남자가 되어야 한다. (정말 웃겨!)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감옥에서 나의 생존 방법이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남선

 

프로그램 노트

감옥은 통제를 위한 공간이다. 모든 것은 관리하기 쉽게 통제된다. 밥 먹는 시간, 취침시간, 옷, 외모, 그리고 성별까지도. 이미 트랜지션 중이었든 수감생활 동안 남성으로 정체화했든 상관없다. 여자교도소에 있는 모든 재소자들은 ‘여자’여야 한다. 나는 남자라고 아무리 말해도, 심지어 서류상으로 남자여도 여자 교도관에게 알몸 수색을 받아야 한다. 수염을 기를 수도, 처방 받아오던 호르몬을 맞을 수도, ‘나의 이름’으로 불릴 수도 없다.

여성들의 공간에 침범한 남성들은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웬걸. 여자교도소에 있는 트랜스 남성들은 공포의 대상이 아닌 욕망의 대상이다. 재소자들 중 가장 실세인 여자만이 이 남자들을 차지할 수 있다.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서 여자교도소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남성’이 되어야 한다.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에게는 여성되기를, 누군가들에게는 남성되기를 요구받는다. 왼쪽 아니면 오른쪽, 남자 아니면 여자로 나누려고 하는 감옥 시스템은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습게 느껴진다.

브라질에도 LGBT 재소자들을 위한 제도는 있다. 그러나 법을 어긴 자들은 법에 의해 보호받을 자격이 없다는 논리는 너무나도 쉽게 이들의 시민성을 빼앗는다.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빼앗긴 공간에서 트랜스 남성들은 건강, 안전, 정의 그 무엇도 보장받지 못한다. 사회의 성별 체계에서 벗어난 몸 자체가 규율의 대상이 되고 처벌 대상이 된다. ‘트랜스’이기 때문에 감옥에 온 것이 아님에도 ‘트랜스’인 것에 대한 처벌까지 같이 받는다. 감옥 안에서 교도관들에 의해 허락된 성별밖에 될 수 없기 때문에, 나로서 살겠다는 최소한의 권리조차도 빼앗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 트랜스 남성들의 요구는 분명하다. 트랜스 남성으로 감옥에 왔으니, 트랜스 남성으로 수감생활을 하게 해달라는 것. 이들은 오로지 두 개로만 나뉜 공간에서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함으로써 저항한다. 왼쪽과 오른쪽. 두 줄 간의 사이, 그 거리에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이들을 보라.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인권해설

2005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교도소에 입소했다. 그녀는 사회적으로는 여성으로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법적 성별은 아직 남성이었기에, 남성 수용동에 수용되었다. 입소 초기에는 다행히 밖에서 사용하던 여성 속옷 등을 가져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 측에서는 점차 다른 수용자의 고통을 고려해야 한다며 속옷 사용 등을 불허했다. 나아가 교도관들은 그녀의 정체성을 부정하며 모멸적인 말을 하고 면담 내용을 누설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그녀는 결국 자살 시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출소 후 그녀는 인권단체들과 함께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고, 2011년 서울지방법원은 담당 교도관들의 감시, 감독 미흡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 3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해당 사건과 관련된 논의들은 링크자료집 참조).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든 있다. 그 말은 구금시설에서 수용 중인 사람들 중에도 마찬가지로 있다는 것이다. 2013년 9월 확인된 자료에 의하면 당시 전국에 7명의 트랜스젠더 수용자가 있었다. 그러나 구금시설 내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지속적인 인권침해와 차별을 마주한다. 자유형이라는 이름 하에 기본적인 자유를 제한하는 그곳은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살아갈 자유 역시 박탈한다. 기본적으로 남과 여, 두 가지 성별로 구분된 수용시설 앞에서 트랜스젠더는 성별정체성이 아닌 법적 성별에 따라 수용된다.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알린 경우 지침에 따라 독거 수용될 수 있으나, 이는 여자(남자)교도소 내 유일한 남성(여성) 독거 수용자가 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는 처우, 의료적 조치들을 받는 것은 더욱더 지난한 일이 된다. 2014년에는 교도소에서 긴 머리를 자를 것을 거부한 트랜스젠더 여성수용자가 징벌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관련법은 위생을 위해 두발을 단정하게 할 것만을 요구할 뿐 길이를 제한하지 않는다며 위 징벌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2017년에는 구치소에 수용된 트랜스젠더 남성 수용자가 호르몬 요법을 거부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소 측의 의료적 조치 거부를 차별로 판단하고 관련 지침 마련 등 개선을 권고했다(자세한 내용은 링크자료집 참조).

이렇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구금시설 내 트랜스젠더 인권 문제에 대해 국가가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령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5조는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고, 2018년 제정된 「수용업무 및 계호업무 등에 관한 지침」은 성소수자 수용자를 성적 정체성에 적합하게 대우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위 국가인권위원회 결정 후에는 「성소수 수용자 수용처우 및 관리 방안」이라는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어 전국 교도소에 배포하기도 했다. 문제는 지침이 단지 서류상의 문장만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교도관들에 대한 교육을 비롯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함에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들은 인권침해 사례들 역시 관련 지침이 존재함에도 발생한 일이었고, 법무부가 세부방안을 마련한 지금에도 여전히 유사한 사건들은 발생하고 있다. 트랜스젠더가 수용시설에서 그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 가장 기본적인 권리들은 여전히 박탈당하고 있다.

“죄를 지었지만 사람입니다. 교정시설이라고 해서 인권이 침해될 수는 없습니다.”

이 글의 첫머리에 이야기한 사건 당사자는 위와 같이 이야기했다. 죄의 대가로 형벌이 부과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존재’ 그 자체를 처벌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됨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국가와 사회에 묻고 싶다. 언제쯤 교정시설 내에서 존재를 부정당하는 이들의 외침을 외면할 것인가.

박한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감독

루이 카를로스 데 알렌카 감독 사진

루이 카를로스 데 알렌카 Luis Carlos de Alencar

감독소개

 

번역 이정주

번역 감수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장애인접근권 연출 권태(서울인권영화제) 애란, 보석(한국농인LGBT)

한국수어통역 보석(한국농인LGBT)

자막해설 권태(서울인권영화제)

자막 성령, 다빈, 고운(서울인권영화제)

 

상영 일정

본 상영 11/30 10:00 ~ 12/1 10:00
앙코르 상영 12/1 10:00 ~ 12/6 10:00

 

라이브토크 – 광장에서 말하다

11/30 19:00 서울인권영화제 유튜브 채널

스틸컷

댓글

  • 2020년 11월 30일
    익명

    성소수자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우리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들의 고통에 함께 하고 빠리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에게도 똑 같은 인권이 주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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