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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

#387

마들렌 르로이어 – 프랑스, 벨기에 – 2019 – 61분 – 다큐멘터리 –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암하라어, 티그리나어, 밤바라어, 소닌케어 – 한국어자막, 한국수어영상

 

 

작품 줄거리

2015년 4월 18일, 리비아와 이탈리아 사이의 지중해에서 난민선이 침몰했다. 8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참사. 이탈리아 정부는 희생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를 착수한다. 사건책임연구원은 지갑, 목걸이, 편지 등으로 남겨진 흔적을 통해 존재를 짐작하고, 난민조사연구원은 살아생전에 망자가 떠나온 고향을 다시 찾아가 망자의 삶을 묻는다. 차마 수신되지 못한 편지의 유류품 번호는 #387. 번호로 남은 흔적을 따라 그들은 덤덤하게, 그리고 마음을 담아 존재했던 삶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현

 

프로그램 노트

오늘도 난민은 분쟁과 폭력, 자연재해 등의 이유로 고향을 떠난다. 수많은 이들이 떠나오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고,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희생자들은 번호로 호명되는 존재가 된다. 정체를 숨길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난민은 이름조차, 국적조차 찾기 힘든 존재가 된다. 기나긴 물음 끝에서야 이들의 존재는 오롯이 기억될 수 있게 된다.

2015년, 한국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지중해에서 발생한 난민선 침몰. 우리는 그 소식을 짧디 짧은 뉴스로 흘려 보내고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난민을 끊임 없이 타자화하고 사회 바깥으로 배제하는 세계에서 이들의 죽음은 단순히 숫자로, 하나의 사건으로만 스쳐지나가곤 한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그 이전과 이후에 있었던 수많은 죽음을 함께 겪은 우리는 알고 있다. 2015년 지중해의 난민선 침몰은 800명이 죽은 1개의 사건이 아니라 1명이 죽은 800개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영화에선 희생자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들은 우리가 왜 참사를 기록해야 하냐는 물음에 덤덤하게 답한다. “정의와 존중”을 위해서, 또는 “망각은 범죄”이기 때문에. 한편으론 확실하게 답을 못내리기도 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영화의 대사처럼 그것이 산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죽음의 재발을 막기 위함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확언할 수 없지만 확신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와 의의를 알고 있다. 죽음 이전에 삶이 있었고 그 삶은 누군가가 이끌어 가던 하나의 세계였다는 것. 그 세계와, 그 주변에서 영향을 주고 받던 세계들을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이 거리에 존재하고 마주했던 이들을 기억한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인권해설

재난의 시대를 산다. 전 세계가 마주한 코로나19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여름마다 폭우와 폭염을 겪으며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날마다 일터에서 들려오는 노동자의 사망 소식에 위험하기 그지없는 노동 세계를 절감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 정세와 남북 관계는 ‘종전’이 아니라 ‘휴전’ 상태인 한반도를 뼈아프게 떠올리도록 한다. ‘위험 사회’라는 말은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다.

재난은 결국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누군가는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고, 누군가는 영문도 모른 채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다. 이 지점에서 유념해야 할 점은, 재난이 불운한 사고나 불행한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각각 존재하는 위험 요소들이나 우연이 재난이 되기까지 수많은 원인과 결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나아가 위험 요소를 재난으로 만드는 요인은 기존에 존재했던 사회적 문제와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모든 재난은 사회적 사건이다. 재난에서 인권 침해를 이야기하면 대부분 재난 이후의 과정을 떠올리지만, 사회적 문제가 재난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재난참사의 발생 자체가 거대하고 구조적인 인권 침해이기도 하다.

재난을 겪은 사람들은 가장 먼저 질문해서 가장 늦게까지 질문을 거두지 않는다. 영문도 모를 죽음의 ‘영문’을 알기 위한 재난 피해자들의 질문은,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회복도 기억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섣불리 질문을 종결하거나 기억을 규정하는 일은 기억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기억되지 않는 진실은 제대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질문이 사회 변화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우리 사회는 조금씩 더 안전해져 왔다.

반면 죽음을 배제하고 타자화하며 망각할 때 모두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산 자와 죽은 자를 다르게 대하는 경계는 뚜렷하고도 명확하지만, 한편 고정불변이거나 절대적이지 않다. 그 경계는 생사의 사이에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람을 기억하려는 사람 또한 존중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이야기하듯, 죽은 자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그 사회의 현재를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재난에 대한 기억과 추모는 곧 재난을 대하는 사회의 역량이기도 하다. 재난을 제대로 알고 기억할 때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재난이 남긴 상처와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없이 사회는 결코 ‘회복’할 수도 ‘변화’할 수도 없다. 진실을 알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인식할 때, 비로소 다시는 그러지 않는 사회를 그려나갈 수 있다. 진실을 밝혀내 사회의 정의와 안전을 세우고 그를 제대로 기록해 기억하는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만 취사선택할 수 없는 재난 피해자의 권리이다.

왜 죽음을 기록하고, 왜 재난을 기억하는가. 기억은 곧 행동이다. 기록된 기억은 사회에 공유되고, 공유된 기억은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기억은 곧 노동이다. 재난에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발굴하고 드러내며 변주하는 과정은 역동과 반목을 동반한다. “망각은 곧 범죄”라는 난민 활동가의 말처럼, 기억은 곧 의무이다. 반면 재난을 개인화하면서 사회의 위치를 고민하지 않을 때, 재난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변화하지 않게 된다. 사적인 기억에서 사회적 기록까지, 변화가 그 곳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기 때문에, 기억은 곧 투쟁이다.

어쓰(인권운동사랑방)

 

감독

마들렌 르로이어 감독 사진

마들렌 르로이어 Madeleine Leroyer

러시아에서 프리랜서 특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러시아, 현대의 강제 노동 수용소>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387>은 닭과달걀엑셀레이터랩의 여성영화인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숫자를이름으로’ 캠페인의 제작자로도 참여 중이다.

 

번역 강혜인

번역감수 인권운동사랑방 노란리본인권모임(가원,어쓰)

 

장애인접근권 연출 고운(서울인권영화제) 훈빈, 태환, 진영(한국농인LGBT)

한국수어통역 진영(한국농인LGBT)

자막해설 요다(서울인권영화제)

자막 망나, 다빈, 고운(서울인권영화제)

 

상영 일정

본 상영 11/26 10:00 ~ 11/27 10:00
앙코르 상영 12/1 10:00 ~ 12/6 10:00

 

라이브토크 – 관객과의 대화

12/4 19:00 서울인권영화제 유튜브 채널

스틸컷

댓글

  • 2020년 12월 21일
    기하학

    세월호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영화. 한국이 부끄럽다. 내가 부끄럽다. 지난 6년 우린 무얼 기억했을까. 한국사회의 죽음에 대한 태도엔 변화가 생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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